PAST
일상 속 일상 展
나는 공포를 주제로 작업한다. 나의 가장 큰 공포는 ‘죽음’이다. 하지만 공포를 직접 표현하거나 나타내지 않는다. 나는 공포로 인한 괴로운 마음을 드러내기보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공포를 달래기 위한 작업을 한다. 누군가 들려줬던 '고래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작품을 만든다. 이런 가장 큰 공포를 달래주는 게 이야기 속 고래였다. 나의 고래 이야기는 조용하고 무겁다. 하지만 내 작품이 시각적으로 따뜻하고 포근하게 보이길 원한다. 가볍고 따뜻하게 바라본 작품과 주제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작품의 느낌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모두가 외면하는 공포를 최대한 따뜻한 방법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공포를 직면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다.
인간은 '우리'이기 이전에 모든 생물의 삶을 살아본다. 작은 벌레부터, 산의 봉우리만한 고래까지. 각각의 삶이 마무리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우리'가 되기 위한 마지막 삶은 고래이다. 거대한 고래는 차갑고 어두운 바다 깊은 곳에서 이전의 삶들의 시간을 반성하고 되뇌며 '우리'를 준비한다. 그 고래의 많은 생각과 모든 생명의 힘이 담긴 것이 바로, '우리'라는 인간이다.
깊은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다시금 나의 시간을 돌아보면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 시간은 삶의 생기를 더한다.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깊은 고뇌와 반성, 그것이 나를 공포에서 멀어지게 하고 달래는 방법이다. 공포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상반된 '삶'에 몰입하는 것이다.
나의 작품은 '우리'가 사는 일상, 세상 속에서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과 '나'였을지 모르는 모든 생명체의 시각에서 바로 본 풍경. 두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에 흔하게 동식물이 나오는 이유도 그것이다. 작품을 바라보는 이의 시선은 '우리'의 시선이지만 작품 속 동물 혹은 식물을 보며 그들의 시선에서 작품 속 풍경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고 고민해보게끔 한다. 같은 공간을 바라보아도 어떤 삶의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음을 담고 있다.
‘어떠한 것’, 혹은 ‘누군가’의 시선으로 구성된 공간을, 작품 바깥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조명을 켠 순간, ‘나’ 본연의 깊은 고민과 생각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선물한다. 그리고 이런 시간이 ‘나’의 공포를 이해하고 주어진 삶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 생각한다.